우리가 성경 66권 어떤 책을 읽어도 이 이야기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에 어떠한 면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창세기가 세상 창조의 기록이라는 의미의 책이지만, 창세기를 읽으면서 아브라함과 그의 선택된 백성인 이스라엘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을 읽지 못하면 단순한 위인전과 같은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다. 창세기에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청사진을 그리는 첫 번째 그림이 나타난다. 하나님이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약속하시고 축복하시는 말씀이다. 성경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믿었고, 여호와께서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증거해주고 있다.
그런데, 성경은 성경을 읽는 사람들을 긴장시킨다. 하나님은 반복해서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여주시고 약속하시지만, 그 약속을 믿지 못하고 생명의 두려움과 생존을 위한 전략을 취하는 반응 사이에 갈등이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가나안 땅에서 살던 그 땅에 기근이 생겨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아브라함이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사건, 86세에 아브라함이 사래의 종 하갈을 통해서 아들을 낳은 사건들을 보면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라 불리기가 어려운 사람 같다. 그런데 아무 기록이 없이 13년이 지난,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찾아오셔서 약속을 확인시켜 주신다. 그리고 이듬 해 고목나무와 같은 사래에게 생명을 허락하신다.
그렇다면, 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는 것일까? 하나님은 실망하고 있었던 아브라함을 다시 찾아오셔서 그 이유를 뚜렷하게 밝혀주셨다. 내가 너와 맺은 이 언약은 나와 너 사이에만 맺어진 것이 아니라 나와 앞으로 태어날 너의 후손들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언약이라 하셨다.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그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민족과 열방이 구원을 얻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읽을 때 생생하게 들려지는 것은 바로 그 약속이 나에게 까지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브라함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집중을 한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강조하고 모범적인 믿음의 조상이라 하지만, 아브라함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모델도 아니다. 아브라함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아브라함을 통해서도 구속의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 아브라함에게 다시 찾아오신 하나님,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지키신 신실하신 하나님,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복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성경은 온통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을 증거해주고 있다.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믿음이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확신하는 것이다. 100세 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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