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레몬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 골로새에서부터 찾아 와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리고 골로새로 돌아가 빌레몬의 집에서 교회가 세워진 것 같다. 빌레몬은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을 얻었고, 그리고 나도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다고 하였을 만큼 골로새 교회의 중요한 일꾼이었다. 그런데 바울과 빌레몬 사이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빌레몬의 종 오네시모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나 도망을 쳐서 로마에 있는 바울에게까지 온 것이다. 바울은 자신을 찾아온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 같다. 그 뒤로 오네시모는 바울의 감옥생활을 도왔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계속 곁에 두고 싶었다고 하였고, 내 심복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하였다.
오네시모 때문에 바울과 빌레몬 관계에 긴장이 생긴 것이다. 바울 입장에서 오네시모를 곁에 두고 싶었지만 빌레몬의 종이었기 때문에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야만 했다. 핵심적인 내용은 오네시모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납하고 그를 종이 아니라 형제로 여겨달라는 부탁이었다. 만약, 여러분이 빌레몬의 입장에서 이러한 부탁을 받았을 때 어떻게 반응할까? 사실, 예수 믿고 난 후에도 마음을 주고 싶지 않는 상대가 있다. 오랫 동안 기도해도 내 마음이 열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실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에 찾아오는 한 가지 영적 사건이 있다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 되었다는 인식이다.
바울이 도대체 무엇을 믿고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냈을까? 오네시모가 무엇을 믿고 바울의 말에 순종하고 빌레몬에게 찾아갈 수 있었을까? 그리고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을 경험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복음 안에서 신실한 동역자로 여긴 것이다.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었기에 그 어떤 문제도 서로 협력하여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던 것이다. 바울과 빌레몬과 같은 신실한 동반자들이 필요한 때다. 성령님이 우리의 신실한 동반자이지만 목회자와 사역자들에게도 복음을 위하여 함께 마음을 나누고 함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동역자들이 필요하다.
세 명의 입장에서 나의 상태를 대신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생각해보자. 바울처럼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면 바울의 수사학적인 글쓰기를 다시 한번 살펴보자. 빌레몬의 입장에서 이러한 편지 즉 거룩한 부담으로 다가온 말씀을 받고 나는 과연 오네시모와 같은 사람을 용납할 수 있는지? 추측하건대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용납하고 자기 대신 바울을 섬기도록 되 돌려보냈을 것이다. 복음을 믿고 담대하게 주인에게로 돌아갈 수 있는 용기와 확신이 있는지? 빌레몬서는 일상의 문제를 풀다가 성경이 된 아름다운 편지가 되어 성경 66권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모든 갈등을 해결하는 복음의 능력과 신비함을 경험하는 곳,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곳을 교회라 말한다. 상처와 분쟁으로 얼룩진 한국교회 안에 복음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들로 세워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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