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는 인사로 시작하며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한 성도들을 격려하고 있다. 1세기 성도들에게 시험이란 예수를 메시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외적인 박해와 내적으로는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약속이 지연되면서 찾아오는 조급함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었을 것이다. 시험이란 ‘한번 건드려본다’ 라는 뜻으로 ‘시련’이란 말로 번역할 수 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시험은 여러 가지이다. 늘 시험을 당하며 살지만 우리가 거기에 익숙해지지 않다. 시험은 겪을 때마다 고통스럽다. 신앙이 좋아질수록 시험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를 믿으면서 처음 당하는 것이 시험이고, 마지막으로 당하는 것도 시험이다.
야고보는 형제들에게 시험에 대한 관점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처음부터 선명하게 권면한다.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하였다. 기뻐한다는 것은 감각적인 즐거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 시련 속에서 감각적으로 즐거워할 수 있을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도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시험을 당할 때 기쁘게 여길 수 있는 이유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어야 마음이 시원해질 것이다. 야고보는 시험이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 답을 한다. 성경은 인내의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임을 강조한다. 인내는 궁극적으로 성도들을 온전하고 구비된 신앙인으로 세워나가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 하였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할 수 있는데 그 이유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였다. 시험은 주님이 또 한 번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배우고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더 가까이 나가게 한다. 그래서 결국은 기쁨을 낳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때는 그 뜻이 헤아려지지 않을 때가 있다. 인내하기 어렵고, 이 믿음의 여정을 내려놓고 싶고, 좌절과 실망으로 내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선한 경향성이 상실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야고보는 바로 그 때 기도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시험이 없어지도록 기도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하고 기본적인 기도는 그 뜻을 알도록 기도해야 한다. 시련을 통해 아프면 그 때 그곳에서의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지혜이다. 시련이 있을 때는 지혜를 구해야 한다. 믿음으로 구해야 한다. 그래서 지혜(하나님의 뜻)를 얻으면 시련도 이길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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