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믿고 난 후에 일어나는 변화가 있다. 새 생명이 잉태된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뿐만 아니라, 그 생명으로 말미암아 내적 갈등과 영적 전쟁이 시작된다. 예수 믿기 전에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이 거룩한 부담이 되어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갈등이 있다는 것은 생명이 있다는 증거이다. 영적 사춘기를 아주 심하게 앓고 난 후 자신은 느끼기 어렵지만 분명 성숙하고 다듬어진 인격과 성품으로 다듬어졌을 것이다.
새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자녀된 우리들에게 기대하시고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서 베드로후서 마지막 장 마지막 절에서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는 마지막 부탁을 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산상 수훈의 결론이라 할 수 있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겠다.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구원받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거룩한 산제물로 드리라’ 권면한다. 그리고 피로 값주고 사신 거룩한 주의 백성들을 위해 영과 혼과 몸이 흠없이 보전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한마디로 하나님 아버지의 기대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이다.
그런데, 더 기쁜 소식은 성경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이라 증거해주셨다는 것이다. 그 행하실 착한 일이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이다. 빌립보서에서는 이것이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이라고까지 말씀하신다. 때로 믿음의 사람들을 권면하시고 징계하시는 이유를 히브리서 기자는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증거하였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변명하지 못하도록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였다.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신성한 성품에 참여 하는 자가 되게 하셨다 말씀하고 있다.
솔직하게 질문하고 답해보자.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단지 꿈과 같은 것으로만 생각되는가? 성경은 왜 우리에게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기를 말씀하실까?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속에 예수 생명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 예수님처럼 살지 못하는가? 내 노력으로 싸우려 했기 때문이다. 우리 중에 어떤 한 분 때문에 마음에 시험을 자주 받고 기도의 문이 닫히고, 그분만 보면 신앙적, 영적 원리가 적용할 용기도 생기지 않는다 말하는 분이 있다. 이제까지 그를 향한 기도와 희생, 충분히 주님은 아신다. 그러나 억지로 사랑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내 속에 사랑의 생명이 있기에 당연히 그분을 사랑할 수 있다고 믿고 나아가보자. 결과를 주님께 맡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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