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언어로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로고스는 언어에 담겨 있는 핵심 메시지를 뜻한다. 메시지의 내용이 논리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파토스는 언어 속에 담겨 있는 감성적인 공감이다. 마음의 울림과 떨림이 있을 때 바르게 설득이 된다는 것이다. 에토스란 말을 하는 사람의 인격과 성품, 진정성을 뜻한다. 이 세 가지 요소 중에서 에토스가 가장 영향력이 크다고 하였다.
설교도 이러한 수사학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말에 동의하는가? 그렇다면 말하는 사람의 에토스가 남달리 뛰어나고 전하고자 하는 파토스가 불붙고 로고스적인 메시지가 있으면 모든 사람이 다 설득되는 것일까?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설교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들이었다. 특히 베드로는 로고스와 파토스와 에토스가 충만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그 중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반응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증거해준다. 그러나 베드로의 말을 듣기 싫어한 사람들도 있었다. 마음을 닫아 버리면 듣지 않는다.
성경은 베드로 한 사람의 말을 전달하는 능력에 집중하지 않는다. 베드로는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녔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버려도 나는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자신만만하게 큰 소리 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고난이 시작 되었을 때, 한 여종의 말 한마디에 그는 뒤로 물러갔고 비겁하게 도망가는 사람이었다. 십자가 사건 이후 갈릴리 바다까지 도망갔으며 여기에서 자기 인생을 끝마쳐야 되겠다고 생각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오순절 날에 제자들과 예수님의 증인들이 함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할 때에 성령을 받게 되었고 담대함이 생겨나게 된다. 베드로에게 나타난 성령의 역사를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는 전하는 자뿐만 아니라, 말씀을 듣는 자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심을 성경은 증거한다. 아무리 로고스와 파토스와 에토스가 겸비된 사람이 전할 때에도, 전하는 자가 성령의 감동으로 전해질 때에도 듣는 자들이 마음을 닫아버리면 들리지 않는다. 베드로는 선지자 요엘에게 하신 “말세에 모든 육체에 영을 부어주신다” 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성령의 역사를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다윗이 이 땅에 오실 메시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게 될 구원에 대하여 노래한 말씀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를 인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역사를 증거 하였다. 2021년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들이 된 우리들, 말씀을 전하는 자나 말씀을 듣는 자 모두가 성령의 감동으로 내 마음이 기쁘고 혀도 즐겁고 육체의 모든 연약함이 회복되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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