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경기도 연천 GP 소초에서 총기사고로 8명의 사망자와 30여명의 육체적, 심리적 부상자들이 있었다. 영결식장에서 하나님, 아들을 잃은 슬픔을 아십니까? 나보고 어떻게 살라하십니까? 이 아들들의 죽음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고 한 말씀만 해달라고 부르짖었던 경험이 있다. 너무 일찍 자녀를 상실을 부모님들과 친구들에게는 해결되지 않은 트라우마로 가슴 먹먹한 시간을 견뎌내고 있을 것이다. 이런 슬픈 일을 당해보지 못한 설교자가 심정을 이해하고 설교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자녀를 잃은 슬픔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된다는 것을 전해야 할 믿음과 확신이 있기에 부활의 메시지로 어찌하여 우느냐?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자녀와 배우자를 잃은 상실을 경험한 기독교인들에게 들었던 가혹한 말 중에 하나가 “이제 그만 슬퍼하세요. 우리 믿음이 있잖아요...” 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닌데, 왜 이런 말을 듣고 더 힘들어했다고 했을까? 2021년 봄, 오랜 시간 동안 육체의 가시를 안고 살아가는 분들, 참 해결되지 않는 문제와 상황으로 근심에 쌓여 있는 분들, 이모양 저모양으로 넘어진 분들, 두려움에 빠져 있는 분들, 의심 가운데 있는 분들에게 부활의 복음이 온전하게 전파되어지고 위로와 기쁨과 소망으로 충만해지는 부활절 아침이 되시기를 바란다.
예수님이 “어찌하여 울고 있느냐?” 물으시는 질문이 아직도 슬퍼하고 있니? 하는 꾸지람일까? 너 아직까지 나를 믿지 못하는구나 하는 불신앙에 대한 질책일까? 부활의 믿음을 가슴 속에 품으면 더 이상 슬픔이 사라질 것이다는 말이 아니다. 그 슬픔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찌하여 우느냐 하는 말씀은 위로의 말이기도 하지만 더 강력한 말씀이다. 이제는 눈물을 닦아도 된다. 지금까지의 너의 눈물을 내가 들었다. 그러나 나를 보아라. 부활한 나를 보아라. 죽음을 넘어선 나를 보아라. 세상 사람들은 죽음이 끝이라 말하지만, 나를 믿는 자들은 죽음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다 하시는 주님의 말씀이다.
2021년 부활의 아침, 이해할 수도, 해석하기도 어려운 고통의 문제,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오래된 슬픔을 안고 부활 예배에 참여한 식구들에게 부활의 능력, 부활의 생명이 임하는 기름부으심의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이제는 눈물을 멈추고 답답하고 낙망하는 것 다 내려놓고 다시 세상을 향하여 달려 나갈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는 선택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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