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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성경숲설교)
안남기목사 2024-05-11 추천 0 댓글 0 조회 186
[성경본문] 히브리서4:14-16 개역개정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본문 : 히브리서 414-16

제목 :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

일시 : 2024. 5. 12.

 

교회 혐오 시대, 기독교인이라 말하기 부끄러운 시대, 당신이 왜 아직까지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를 물을 때 흔들리지 않는 이유와 증거를 말할 수 있을까요?

 

신약성경 중에 공동서신이라는 책들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유다서, 요한 일이삼서, 요한계시록) 분위기는 1세기 로마 제국의 박해 속에서 고난을 받고 순교까지 이르는 상황 속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1세대 사도급 지도자들이 믿음의 다음 세대에게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격려하는 선한 싸움을 위한 편지라 말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1차 독자들은 어떠한 상태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들은 말씀들을 흘러 떠내려가도록 하였고, (2:1)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었고 (3:13) 때가 오래되어 성숙해야 함에도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상태였고, (5:12). 그들은 모이기를 폐하는 자 되어 신앙은 퇴보를 보이고 있었습니다(10:38). 이들의 상태를 손은 피곤하고 무릎은 연약하고 다리는 절고 있고 믿음의 경주에서 벗어난 상태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어찌 1세기 그리스도인들뿐이겠습니까?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고 한국교회의 모습이라 여겨집니다. 히브리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모범답안으로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소망의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이런 상황 속에서 유대교 출신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고 하고 심지어 기독교 신앙에 배교를 결심한 성도들에게 편지 형식이지만 권면과 설교체로 구성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안타까운 심정이 형식과 문체에 나타납니다. 편지를 쓰다가 안타까운 심정이 타올라 아주 단호한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 글을 마치면서 성도들에게 나의 권면의 말을 용납해달라는 말을 쓰면서 마무리합니다. (13:22)

 

사랑하는 여러분, 1세기와 같은 극심한 박해는 아니지만, 최근 한국 사회 안에서 교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기를 원치 않는다하고 기독교 신앙을 포기할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분들은 어떻게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고 싶으십니까? 상황이 다르고 문제가 분명 다르지만, 기독교 신앙이 흔들리는 세대들을 향하여 히브리 기자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의 신앙이 견고해지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히브리서 내용은 기독교의 복음은 구약의 선지자보다, 천사보다, 모세와 여호수아보다, 대제사장보다, 성전보다, 제사보다 더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는 라는 용어입니다. 더 나은 본향, 더 좋은 언약, 더 좋은 소망, 더크고 온전한 장막, 더 나은 제사, 더 낫고 영구한 소유 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번에 영원한 완전한 제사를 드리신 대제사장, 믿음의 주, 온전케 하시는 분이라 증거하고 있습니다.

 

일반적 의미에서 믿음은 목표를 가지고 소망하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고, 지각할 수 없는 실체를 지각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누구를 믿는다면 오늘 100만원을 주는 것과 내일 100만원을 주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히브리서 113절에서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알았다 말씀합니다. 여기서 모든 세계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계 즉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포함합니다. 여기에는 어제 일도, 장래 일도 주관하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는 하나님, 그분의 신실하심,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믿음을 통해 성도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됩니다.

 

어린 아이가 육체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있지만, 내면이 성장하는 것은 그가 쓰는 말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글자는 기호로서 하나의 표시하는 방법일 뿐입니다. 그러나 말을 배운다는 것은 문자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자가 표현하는 세상을 내 마음 안에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편지를 읽는다는 것은 다만 글자를 읽어 상대방이라는 존재가 내 마음 안에 들어와서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 신앙의 언어를 배워간다는 것은 곧 그 언어의 세계를 이루어가는 것이므로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배운다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을 내 안에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이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믿기는 하지만 현실이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만으로는 안된다라고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안에 정말 믿음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믿음이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히브리서는 믿음이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믿는 것인지, 변론하면서 신앙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통해서 내 안에 진정한 믿음이 있는 증거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믿음의 증거로 내 안에 담대함이 있는지를 물어보시면 됩니다.

 

담대함의 반대는 두려움입니다. 원래 인간에게 두려움이란 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후, 아담과 하와의 마음 속에 생겨난 것입니다. 두려움은 사탄의 설계도입니다. 내 생각과 삶의 언어가 두려움에서부터 나온 것이라면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분입니다. 분명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 하였습니다.

 

나를 지배하고 있는 두려움의 언어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십시오. 세상은 참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에 빠져 사는 사람들, 세상은 참 차갑고, 무의미하다는 느낌 속에 사는 사람들, 사람들이 나를 공격할 것 같은 공포 속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 그래서 사람들을 피해서 도망 다니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공격하기 전에 공격하게 되고,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반사회적인 범죄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믿음의 눈으로 보면 꼭 이런 세상은 아닙니다.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세상은 내가 경험한 것보다 더 재미있고, 따듯하고,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너무 억울한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것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생각이 좁아지게 되어 자신이 그 힘들었던 순간에 경험했던 그 사건이 전부인줄 알고 삶을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외롭다, 힘들다, 두렵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을 가장 많은 내용을 할예하며 두려움을 믿음으로 이겨낸 믿음의 사람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방의 땅에 있을 때에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그 땅을 약속을 받고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을 때의 심정은 장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사람이 두려웠기 때문에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기까지 했습니다. 약속이 더디 이루어지니까 사라의 몸종 하갈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두렵기때문에 미래를 알고 싶어 하지만, 그 누구도 미래를 다 알고 현재를 살아가지는 못합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미래를 몰라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이끄시는 대로 따라갔습니다. 아브라함은 가야 할 곳을 미리 보고, 가야 할 길을 미리 알았기 때문에 순종한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고향과 아버지집을 떠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노년에 이삭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죽은 자를 살리실 것을 믿었고, 더 좋은 것을 주실 것도 믿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현재와 미래와 사람과 환경에 대하여 두려움이 있다면, 내 안에 하나님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있어 결코 이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 말한다면, 내 삶의 과정 속에 일어나게 될 크고 작은 변화의 사건 앞에서 마음이 허둥 지둥대고 야단법석을 떨면서 심란함을 느끼고 있다면 다시 물어야 합니다. 난 믿음이 있는가?

 

또 한가지, 믿음의 증거로 내 안에 부요함이 있는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욕심을 줄이면 마음이 부요해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이란 파멸을 맛보기 전까지 절대로 스스로 자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1:8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땅에서의 삶이 가난하고 부족한 삶을 살았지만, 정말 부요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를 그 증인으로 소환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도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늘의 큰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24-26)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더 놀라운 사실을 전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스라엘 역사의 최고의 리더 모세가 믿음의 증거를 보여 준 인물이지만, 아브라함보다, 모세보다 진정으로 부요한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의 선조들이 멀리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믿음으로 증거를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평가를 한 것입니다. 진정으로 부요한 사람들은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신약시대의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 구약의 성도들, 믿음의 선진들보다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다는 것입니다.

 

11: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못하였으니 11: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약속한 것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약속된 것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온전한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고, 더 좋은 것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사를 통해서 제공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라는 주제로 히브리서 11장에서 이스라엘 역사를 정리합니다. 구약에 나타나는 믿음의 선진들,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산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알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핵심적인 메시지는 이 사람들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당신들이 더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전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초기 그리스도 공동체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신학과 수사학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편지 형식을 빌려 교훈과 권면을 반복하면서 박해를 받아 신앙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을 굳게 붙잡을 것을 권면한 것입니다. 먼저 유대교가 내세우며 자랑하는 선지자, 천사, 모세, 아론, 제사 및 제사장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는 비교되지 않는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논증형식으로 설명합니다. 이어서 믿음을 지키는 방법으로 인내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마지막장에서 자신의 당부를 권면의 말이라 하였습니다.

 

13:22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내가 간단히 너희에게 썼느니라

 

히브리서 저자는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다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여러 부분과 모양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배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죄를 책망하고 심판을 경고하시기도 했고, 끝내 돌아오지 않는 백성들에게 회복과 구원을 약속하시겠다는 예언의 말씀을 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들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대제사장이 되셔서 모든 구속의 사역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바라보며 끝까지 신앙을 지킬 것을 권면한 것입니다.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믿는 도리라 혼자만의 신앙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동시에 말하는 소리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함께 할 것을 진심으로 전해준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들려준 응원 메시지를 듣고 우리 함께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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