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 전도자, 히브리어 ‘코헬렛’은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워 온 어느날 사람들을 불러 놓고 자신의 삶에서 깊이 체험한 것을 고백하는 사람이란 의미가 있는 용어이다. 전도서도 지혜서로 분류한다. 잠언이 강조하는 지혜는 부지런하고 의롭고 정직하게 행하며 사는 사람을 형통케 하신다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같은 지혜서이지만 욥기와 전도서는 인생의 여정 속에 선한 질서에 대한 회의를 보이면서 한 걸음 물러 앉아 인생의 문제를 사색하고 질문한다. 욥기는 욥이라고 하는 한 개인이 인간의 비극적 실존의 문제 중에 무고한 자가 당하는 고난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책이라 한다면, 전도서는 인간의 비극적 실존인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질문과 통찰을 통하여 지혜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전도서 읽기의 진입로는 먼저 전도서의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서론과 결론에서 화자가 전도자 3인칭으로 사용하고 있고, 본론에 나타나는 전도자는 1인칭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액자와 같은 구조라 말한다. 그래서 이 두 목소리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살펴보면 전도서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보인다. 먼저, 액자 안에 있는 1인칭 전도자의 메시지를 들어보자. 전도자는 해 아래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을 살펴서 알아내려고 지혜를 짜며 심혈을 기울여 찾아낸 깨달음을 전해준다. 헛되고 헛되다는 깨달음이었다. 전도서가 지혜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지혜를 얻는 것, 즐거움도 사업 (2:1-11)에 대해서도 회의적으로 말한다. 그 이유는 죽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도자는 죽음 앞에서 지혜로운 삶을 제시한다. 전도자의 대답은 “지금- 여기에서 삶을 즐기고 누려라” 하는 대안이다. 죽음의 세력 앞에 삶의 의미와 가치를 포기하지 말고, 삶이 허무하고 삶의 모순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의 삶을 하나님의 선물로 인식하고 단 한번 뿐인 인생 즐겁고 기쁘게 살아갈 것을 가르친다. 여기까지가 해 아래서 발견한 전도자의 지혜이다. 액자 밖에 있는 전도서는 이 지혜자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과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은 것이다 하면서 이들의 경계를 받으라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전도서 기자가 정말 하고 싶은 가르침은 마지막에 나타난다. 두 가지의 메시지이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과 둘째,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있을 것임을 기억하라는 가르친다. 전도자는 마지막으로 해 위의 세계가 있을 뿐 아니라 해 위의 세계를 바라보아라 가르친다. 전도자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하나님,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임을 말한다. 그렇다. 우리 인생의 모든 이력이 평가받을 것이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부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기 삶을 경영하고 아름답게 살아드린 인생들에게 영원히 거하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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