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찾아와 영생 얻는 방법을 물었을 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등을 돌린 채 슬픈 기색으로 근심하며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예수님은 십계명 중에 여섯 개의 계명을 언급하시면서 계명을 지키라 하셨다.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내가 지켰다’ 자신있게 대답한다. 그런데 스스로 아직도 부족한 것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을 한 것을 보면 완벽주의에 가까운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예수님께 저에게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 물었다. 예수님은 네가 온전하여지기를 원한다면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겠느냐? 그리고 나를 따를 수 있겠느냐는 대답을 하셨다.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적용시킨다면 많은 기독교인들이 교회를 떠날 것 같다. 이 말씀이 영생을 얻는 예수님의 대답이라면 부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일까?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까? 질문에 예수님은 “와서, 나를 따르라”는 명하셨다. 이는 영생으로의 초대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것은 이 재물이 영생이신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는데 발목을 잡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불신자들의 삶이 허망한 까닭이 신자들보다 죄를 많이 짓거나 재물의 탐욕이 더 강해서가 아니다. 반대로 신자의 삶이 충만한 까닭도 죄를 덜 짓고 선행을 많이 하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복되다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생의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현재 너머의 죽음 이후의 영원한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게 될 것을 확신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불안이나 초조나, 세상 재물과 인기와 명예에 집착하지 않고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의 삶’을 모르는 사람들은 나이드는 것이 무척이나 서럽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죽어가는 자신을 느끼기 때문이다.
복음은 단순하게 두 가지 반응으로 나타난다. 복음을 듣고 믿고 반응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 나라 복음 때문에 슬퍼하고 근심하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이다. 종교적인 생활을 오랫동안 했어도 아직도 재산을 모으는 것에 집착하고, 사람들의 관심과 칭찬에 눈치보며 살고 있다면, 나는 진정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지를 스스로 묻고 예수님의 말씀에 반응해야 할 것이다.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 놓고 내 주 되신 주 앞에 나오라.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하라. 영생의 삶을 기다리며 사모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예배의 자리가 영생의 기쁨을 누리는 복된 자리가 될 것이다. 한 주간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영생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댓글0개